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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이야기/응급실 일기

trauma CPR

출근하고 조금 뒤 trauma CPR이 온다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다르게 어떻게 다쳤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상에 의한 CPR환자는 대개 예후가 좋지 않다.

심정지가 발생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이고 많은 경우 ROSC가 되기 어렵다.

 

119 신고 후 약 40분정도 지난 시각에 병원에 환자가 들어왔다.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하니 자세히는 적지 못하지만

양측 동공이 모두 열려있었다.

처치실 바닥은 금새 피가 흘렀다.

외상이 심해서 intubation을 시도할 수 없는 상태였다.

O2 sat은 오르지 않았다.

neck brace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cricothyroidotomy를 했다.

간호사도 나도 환자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신경쓰지 못했다.

suction을 해도 계속 피가 흘러났다. suction bottle이 금새 절반이나 찼다. 

그 이상 더 찼는지는 모르겠다. 보지 못했으니.

 

peripheral 로 NS 1L 두개 달아 full drop하고 수혈랩 넣고 pRBC를 입력했으나 환자는 그때까지 버티지 못했다.

saturation이 오르지 않아 이상해서 맥을 잡으니 맥이 전혀 없다. 흉부 압박을 계속하는데도 맥이 없다.

ECG는 asystole이었다. 압박시 생기는 리듬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많은 출혈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

가족의 기분이 어떠할지 차마 짐작되지 않는다.

보호자는 담담한 얼굴로 사망을 받아들였다.

 

어림짐작한 사고 지역으로부터 이 병원과 대학병원은 거리 차이가 크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그러니까 지금처럼 대학병원 기능이 사실상 정지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대학병원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갔으면 살았을까?

모르겠다. 다만 간호사 4명에 의사 1명이 달라붙어 버둥대지는 않았겠지. 어쩌면 수혈랩이 더 빨리나왔을지도.

어쩌면 CPR하면서 응급수술방으로 들어갔을지도.

 

이전에 2차병원에서 감당하기에 너무 상태가 안좋은 환자들이 갈데가 없어 떠밀리듯 밀려온다고 지인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그러니까 의사를 더 많이 뽑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 그의 문자를 보며 고민했다.

 

매년 새로 배출되는 의사 수가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내과 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말을 할까? 흉부외과는 이미 20년 전부터 폐과가 되기 직전이었고 매년 정원과 상관없이 필수과가 운영 안 될 정도로 지원자가 줄어들어왔다는 말을 하면 의사 수가 문제가 아니란걸 알지 않을까?

아니면 이국종 교수님이 이 사단이 나기 전부터 계속 이야기했던 시스템의 문제를 설명할까? 그러면 이해하지 않을까?

 

결국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설명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말을 하건, 어떤 설명을 하건.

사람들은 의사 수를 늘리면 해결된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뭐라 몇줄 답문 적는다 한 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여기서 응급실 의사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 밖에.

 

옛날 의약분업 당시 의사 파업은 그래도 도리가 살아있었다.

응급실을 개인적 신념으로 지키는 이들에게 파업하는 이들은 응원을 보냈다.

너희들이 의료의 최전선을 맡아주어 우리가 파업을 할 수 있는 것이라 고마워했다.

그러나 이젠 동료들에게도 부역자니 뭐니 하며 욕을 먹는다.

환자가 더 죽어야한다며 인간같지 않은 말을 한다.

커뮤니티에서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을 했다가 차마 들을 수 없는 욕까지 듣는다.

 

같은 편은 없다.

사람들은 힘들면 때려쳐라 너 아니어도 의사하고싶다는 사람 많다. 의사는 죄다 살인자들이다 라는 말을 하고.

동료라고 생각했던 의사들. 정확히는 후배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며 저주를 퍼붓고 쌍욕을 날린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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