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혈변이 계속 나온다는 환자가 본래 지역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며 받아줄 수 없는지 문의가 왔다.
그 지역이 워낙 119 환자를 안받다 보니 주변 소도시 작은 병원으로 가는 일이 많고 병원 섭외 될때까지 전화 돌리는 119 대원이 너무 고생이다 싶어 당장 응급내시경 등 응급시술 안되지만 갈 데 없으면 일단 오시라 했다.
환자가 왔는데 수액좀 맞고 혈압은 유지되는 상태라 지혈제 쓰고 수혈 대비 혈액검사했다.
다행히 혈색수 수치가 낮지는 않아 응급 수혈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 혈색소는 하루 이틀 내 시간이 지나서야 떨어진다
왜냐하면 당장 출혈이 있을 땐 피가 부족해도 농도가 유지되다가 잃어버린 피 만큼 체액량이 늘어나서야 줄어든 혈색소 만큼 피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특이력은 10일전 치핵수술
치핵수술 후 잘지내다가 갑자기 선혈변을 보는 경우였다
이런 경우
치핵 수술 후 며칠 간 약간의 출혈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이 환자는 수술한지 10일째. 치핵 수술 탓일 가능성이 높으나 조금 애매했다
출혈양도 정상적인 수술 후 출혈량이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원인을 찾아야한다
그래서 시티검사를 했다
시티에서는 직장내 혈종이 보일 뿐 다른 소견은 없다
수술로 인한 장천공이나 장괴사 장마비 등 소견도 없다
시티에서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것은
최악의 경우들을 피했다는 뜻도 되니 오히려 다행이다
응급실에서 해 줄 것은 환자에게 부족한 피 주고 혈압 유지해주고 안되겠다 싶으면 응급내시경이나 응급수술 연락하는 것이다
수술 부위 문합부 출혈일 가능성이 조금더 높아졌다
일단 10일이나 지나서 갑자기 출혈이 심해진 것이 이상했기 때문에 시티에서 별거 없어 내시경으로 출혈부위 확인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래서 내과 앞으로 중환자실로 입원시켰다
문제는 다음날
그 환자를 수술한 외과 원장이 병원으로 전화해서 내과 담당의와 간호사들을 붙잡고
"외과환자가 왜 내과로 입원했느냐"
"치핵 수술 후 수술 부위 터질 수 있는데 왜 내시경하느냐 내시경 금기다"
(아니다. 수술 후 출혈량으로 보기 양이 많거나 병변확인이 필요하면 내시경으로 원인 감별 할 수 있다)
"검사 결과가 어떻냐. 내가 당장가서 재수술 할 수 있는데 환자 상태가 어떤거냐"
등등...
단순히 본인이 수술해서 문제 생긴 환자 상태가 궁금하고 걱정되서라고 보기엔 좀 심할 정도로 전화를 해댔다.
나중에 이걸 알고 환자 받은 내과 선생님에게 얼마나 민망하던지...
원인 감별이 필요하다 판단되면 sigmoidoscopy 시행 후 재수술이 필요한 것을 확인한 후에 외과로 전과하면 된다
그 외 이유, 이를테면 게실, 혈관기형, 장 염증병변, 심하게는 암 같은 원인들도 생각을 해야하는데...
이런 부분을 전부 무시하고 어쨋든 10일전 수술했으니 외과에서 다시 수술하면 되겠네? 라고 판단하고 외과로 전과해서 출혈이 심하니 당장 수술합시다?
이건 아니다 싶다
물론 출혈때문에 혈압이나 맥박수에 문제가 생기거나 혈색소 수치가 빠르게 떨어지면 그게 맞을 수 있다
상황이 급하면 가장 가능성 높은 쪽에 올인하는 결단을 내리는게 맞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내시경부터 하면 내과적 원인이 확인되고, 수술부위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고 내시경적 시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자신이 한 수술에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10일이나 지나서 온 환자를 내시경하면 수술부위 터진다고 벌벌 떨며 난리를쳤는지...
그 외과 원장이 내시경 금기라고 따졌다는데, 심지어 금기도 아니다
자기가 수술한 환자 잘못될까봐 걱정되고 불안해서 정신 없는것은 이해하는데
맞지도 않는 소리하면서 그 환자 치료 해보겠다고 열심히 하는 병원에 대고 뭐라 난리 치는게 맞나 싶다
그 내과 선생님 황당하셨는지 본원 외과 선생님에게 내시경 금기 맞는지 물어보셨더라...
당연히 sigmoidoscopy가능하다 답변 들으셨고...
우리야 이런 경우 황당하네... 하고 끝나지만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내시경이 금기가 아니고 내시경으로 병변 확인하는게 환자에게 더 유리한 결정일 수 있습니다 이걸 다시 설명해야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그 외과 원장은 하면 안된다던데요?" "바로 응급 수술해야한다던데요?" "왜 내과에서 환자를 보냐고 따지던데요?"
이럴테니까
이런 케이스 한번 시달리면 진이 빠진다
정말로. 그렇게 걱정되서 다른 병원에 전화해서 계속 난리칠거면 애초에 제대로 수술하던지
(수술 합병증 0% 불가능한거 잘 알고 있고 이 글에 기분 상하 실 고생하시며 수술하시는 외과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왜 타 시도까지 환자 실려오게 만들어 놓고 여기다가 화풀이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의학 이야기 > 응급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과 사망 3136명 (0) | 2025.02.22 |
---|---|
trauma CPR (1) | 2025.01.18 |
응급실 진료 중 병동 뇌경색 환자 발생 (2) | 2025.01.02 |
의식 저하 환자 (2) | 2024.11.30 |
노인 요양 환자 폐렴 (3) | 2024.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