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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이야기/응급실 일기

전원이 안되는 환자

출근하니 의식이 stupor인 환자가 있다
산소는 15L. 
자칫하면 벤트 걸어야할 컨디션이다
WBC는 3만까지 오르고 Cr 수치도 올라 sepsis같아 보였다
기록을 보니 새벽에 증세가 발생했는데 두시간동안 119에서 병원 섭외가 안되어 헤맨 환자다
이대로는 환자가 죽을까 싶었던지 당직이던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환자를 받았고 상태가 위중해 응급처치후 대학병원으로 전원하려 했으나 서울까지 연락해도 가능한 병원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 환자를 인계 받고 궁여지책으로 본원에 입원 시키려 했으나, 외래 과장이 환자 보호자가 "적극적 치료"를 원한다는 이유로 못보겠다 해버렸다
어차피 중환자실 자리도 없었지만 처음에는 전원 어려우면 자기 앞으로 받겠다 해놓고 말 돌려 못받겠다 하니 이 환자는 대학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본원에 입원하지도 못하고 중간에 떠버린 상태가 되었다
외래 과장의 행동에 욕이 나왔지만 본인이 못보겠다는데 어쩌겠나
 
한숨만 푹푹 나오는 상황이었다
보호자로 온 환자의 부모는 울면서 주저앉으며 어떻게든 살려달라 애원했다
나는 아주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한 어조로 하는데 까지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부모마음 짐작 안되는건 아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고 말지 싶을 것이다
보호자의 애원을 보며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난 보호자 손을 잡아주며 위로하거나 같이 속상한 표정을 짓지는 못한다
변명을 하자면 차라리 냉정을 유지하는게 환자에게 더 이롭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거다
 
 
어쩔 수 없이 응급실에 붙잡고 환자를 보았다
주사제를 추가 처방하고 몇시간 마다 검사가 나가고 항생제를 투여하고 수액을 교체하고... 정신없이 환자를 보고 서너시간마다 새로운 처방을 입력했다
간호사들은 계속 그 환자 모니터를 보고 있어야했고 4시간마다 메뉴얼로 혈당을 포함한 바이탈을 확인했다
한참 시름하던 차에 다른 보호자가 대학병원도 못가고 본원에 입원도 안되니 응급실을 나가야 하느냐 물었다
아마도 진료 안되니 나가라는 스토리의 응급실 이야기를 들었나 싶었다
 
"당연히 안되죠 저런 상태의 환자를 응급실에서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치료 하는데 까지 해야죠"
아주 당연한 대답.
아마 대부분의 응급실이 이렇게 행동하겠지만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세상은
응급실과 의사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지... 
 
산소도 줄이고 열도 잡히고 바이탈이 안정화 된 후 혹시 회복되려나 하고 있는데 새벽에 다른 보호자가 왔다
"지금 우리 애가 저런데 응급처치는 안하고 있습니까?"
 
어떻게든 대학병원 보내려 전원의뢰하고 어떻게든 바이탈 잡고 치료해보려 발버둥친 입장에서는 순간 대답 할말을 잃어버리는 질문이었다
그래 보호자 딴에는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렇게 까칠하게 표현한 거겠지...
 
",,, 이미 응급처치는 모두 들어갔습니다만"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환자의 부친이 그 보호자를 데리고 나갔다
 
다행히 하늘이 도우사 그날은 응급실에 환자가 많이오지 않았다
또 다른 바이탈 안좋은 환자가 깔리거나 저번처럼 100명 넘게 왔으면... 상상하기도 싫다
간호사들도 정신 못차리고 환자는 밀리고 나는 실수 안생기나 덜덜 떨고 그 환자는 어느정도 방치 상태로 놓였겠지
그래서 정말 왠만하면 응급실에 환자 안 깔아놓는다
이번에는 다행히 숙련간호사들 타이밍에 환자가 깔렸지만 신규 간호사 2명이상인데 이상황이면 오더 처리가 반쯤 마비된다
 
결국 그 환자는 전원이 안되어 아침에 상황실에 재차 전원의뢰를 부탁했다
 
퇴근할 때 동기 형에게 환자를 인계하니 형이 말했다.
'이 환자는 처음부터 안받는게 맞다고'
 
그래서 내가 답했다
'그랬으면 이 환자 죽었을 거라고'
 
나 역시 현 병원에서 처리가 불가능한 환자는 거절해왔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그 환자를 받은 응급의학과 선생님은 의사로서 해야 할 올바른 선택을 했다.
나 같은 가정의학과 당직의가 하기 힘든 용기 있는 선택 말이다